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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시대의 인문학 (우리는 재난을 모른다, 팬데믹, 위험사회)

by dduubi-kim 2025. 7. 29.

홍성욱 작가의 『우리는 재난을 모른다』는 코로나19 이후 급격히 바뀐 세계 속에서, 우리가 재난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으며, 또 얼마나 무지한지를 날카롭게 짚어내는 인문학적 성찰이다. 단순히 질병의 문제를 넘어서, 재난을 둘러싼 사회적·정치적 맥락을 분석하며 ‘재난은 자연이 아닌 사회가 만든다’는 통찰을 전한다. 지금 이 시대에 반드시 읽어야 할 인문학적 시선을 담고 있는 이 책을 깊이 있게 리뷰해본다.

『우리는 재난을 모른다』의 핵심 메시지

『우리는 재난을 모른다』라는 제목은 우리 사회가 재난을 얼마나 무지하고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있는지를 그대로 드러낸다. 홍성욱 작가는 과학기술학(STS)이라는 독특한 관점에서, 재난이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 정치, 기술이 얽힌 복합적인 사회적 산물이라고 강조한다. 특히 그는 감염병을 예로 들며, 정작 위험한 건 바이러스 그 자체가 아니라 바이러스에 대한 사회의 반응이라고 말한다. 마스크 대란, 백신 음모론, 사회적 혐오와 낙인 등이 감염병 자체보다 훨씬 더 심각한 사회적 재난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재난 구성에 있어 미디어와 정치권력의 역할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재난 상황에서 언론이 선정적 보도에 혈안이 되거나 정치인들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순간, 시민들은 사실보다는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저자는 바로 이런 지점에서 '재난은 사회가 만든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팬데믹의 경험은 단순한 보건 위기를 넘어, 인간 사회의 불평등하고 불투명하며 위계적인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었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단순한 경고로 끝나지 않는다. 저자는 재난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야말로 민주주의를 더욱 성숙하게 하고, 시민의식의 근간이 된다고 역설한다. 우리가 재난을 단순히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으로 소비하지 않고, 그 이면에 숨겨진 사회적 메커니즘을 깊이 이해할 때에만 앞으로 닥칠 위기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팬데믹이 드러낸 사회의 민낯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 사회의 충격적인 무방비 상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우리는 재난을 모른다』는 이 지점을 날카롭게 비판하며, 단순한 위기 대응 매뉴얼의 부재를 넘어 근본적인 사회적 취약성을 도마 위에 올린다. 팬데믹은 그저 질병의 확산이 아니라, 돌봄의 공백, 정보의 왜곡, 사회적 신뢰의 붕괴를 통해 진정한 의미의 '재난'을 만들어냈다.

홍성욱 작가는 사회적 불평등이 재난의 심각성을 배가한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코로나19의 가장 큰 피해자는 사회적 약자들이었다. 저소득층,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등은 방역 과정에서조차 철저히 차별받았으며, 이들에게 '사회적 거리두기'는 그저 요원한 꿈에 불과했다. 책은 이러한 현실을 구체적인 통계와 생생한 사례로 낱낱이 파헤친다.

더불어 팬데믹 상황에서 정보의 생산과 유통 또한 재난을 악화시키는 주요 원인이었다. 허위 정보, 과장된 뉴스, 유튜브 기반의 음모론 등은 사람들 사이의 불신의 골을 깊게 만들었고, 공동체 의식을 급격히 약화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은 점점 더 고립되고, 사회는 집단적 공포와 히스테리에 빠져들기 쉽다.

책은 팬데믹이 단순한 바이러스 문제가 아니라, 인간 사회가 오랫동안 외면해온 근본적인 문제들—만연한 불평등, 뿌리 깊은 차별, 왜곡된 정보 권력—이 한꺼번에 수면 위로 드러난 과정이었다고 분석한다. 따라서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진정한 회복은 백신이나 치료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재구성에 있다.

위험사회와 재난 인식의 전환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 개념은 『우리는 재난을 모른다』와 깊이 연결된다. 벡은 현대 사회가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위험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리스크 사회'에 진입했다고 보았다. 홍성욱 작가는 이 개념을 바탕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새로운 유형의 재난을 마주하고 있다고 말한다. 핵발전소 사고, 기후변화, 감염병 확산 등은 모두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위험’들이다.

이 책은 이러한 위험을 단순히 통제하거나 예방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위험은 사회 내부의 모순, 즉 자본주의, 권력관계, 기술 의존의 문제들이 겹쳐진 결과물로 해석된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한 기술적 해결이 아니라, 인문학적 통찰과 사회적 책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재난을 둘러싼 인식의 전환은 개인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과제이다. 우리가 재난을 '예외적 사건'으로만 바라보는 한, 진정한 대응은 불가능하다. 홍성욱 작가는 재난을 통해 드러나는 사회의 민낯을 직시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공동체적 감각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이 책은 독자에게 묻는다. “우리는 정말 재난을 알고 있는가?” 이 물음은 단지 과거의 팬데믹을 돌아보자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위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시민으로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를 성찰하게 만든다.

『우리는 재난을 모른다』는 팬데믹 시대의 인문학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재난을 둘러싼 사회의 작동방식을 날카롭게 비판하면서도, 그 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성찰과 변화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 책은 단순한 리뷰를 넘어, 독자의 시선을 바꾸고 사고의 틀을 확장시키는 계기를 제공한다. 재난의 시대, 지금 꼭 읽어야 할 인문학이다.